첨단산업 핵심기술 유출 차단…정부, 처벌 강화·범부처 수사 공조 확대
한국전기연구원이 2021년 4월 개발한 SiC 전력반도체 제조용 웨이퍼 (2021.04.21) / 사진 = 한국전기연원 제공
【서울 = 서울뉴스통신】 김부삼 기자 = 정부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국가 첨단산업의 핵심기술을 보호하기 위해 기술유출 범죄에 대한 처벌과 경제적 제재를 대폭 강화한다. 기술유출로 얻는 이익보다 더 큰 불이익을 부과하고, 관계부처와 수사기관의 협력체계를 정비해 국가 산업경쟁력 보호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산업통상부는 19일 김정관 장관 주재로 제76회 산업기술보호위원회를 개최하고 국가핵심기술 보호와 기술유출 범죄 대응을 위한 종합적인 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는 위원회 당연직 위원뿐 아니라 경찰청과 중수청, 공소청, 방위사업청 등 관계기관이 참여해 산업기술 보호를 위한 범정부 협력 방안을 검토했다.
정부가 기술보호 대책을 강화하는 배경에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해외 기술유출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국가정보원이 적발한 산업기술 해외 유출 사건은 2021년 22건, 2022년 20건, 2023년 23건, 2024년 23건, 2025년 19건으로 집계됐다. 최근 5년간 총 107건에 달한다.
특히 최근 국정감사에서는 반도체 분야 핵심 인력의 해외 이직과 기술정보 유출 가능성에 대한 관리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기술보호 정책을 담당하는 부처와 정보·수사기관 간 협력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요구도 이어졌다.
정부는 우선 국가 경제와 안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기술을 국가핵심기술로 신속하게 지정할 수 있도록 관련 절차를 정비할 계획이다.
해외 기업에 의한 기술 확보 시도를 차단하기 위해 국가핵심기술 관련 심사 대상도 확대한다.
기존 심사체계에 더해 해외법인의 매각이나 철수, 외국인이 국내 법인 또는 단체를 활용해 추진하는 인수합병(M&A) 등도 심사 범위에 포함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기술보호 역량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중소기업과 대학, 협력업체에 대한 관리도 강화된다.
정부는 산업기술 보호 실태조사의 횟수와 조사 범위를 확대하고, 조사 과정에서 확인된 취약점을 기업이 개선하지 않을 경우 시정조치를 명령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할 예정이다.
또한 보안체계가 취약한 협력업체를 대상으로 기술보호 취약점 진단과 지원을 확대하고, 국가핵심기술이 활용되는 연구개발(R&D) 과제에 대해서도 보안 관리 수준을 높일 방침이다.
반도체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핵심 인력의 해외 유출을 예방하기 위한 제도 개선도 추진된다.
다만 인력 이동을 제한하는 과정에서 직업 선택의 자유 등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정부는 관계부처 협의를 통해 합리적인 관리 방안을 마련한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핵심 연구인력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과 이직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정보 제공 방안 등을 검토할 계획이다.
기술유출 범죄에 대한 경제적 제재 역시 한층 강화된다.
정부는 기술을 불법적으로 빼돌려 얻은 범죄수익의 몰수·추징 범위를 확대하고, 피해기업에 대한 손해배상액을 산정할 때 해당 기술의 연구개발에 투입된 비용을 최소한 포함하도록 제도를 개선할 방침이다.
이는 기술유출로 확보할 수 있는 경제적 이익보다 범죄에 따른 손실이 더 크도록 만들어 불법적인 기술 탈취 시도를 사전에 억제하겠다는 취지다.
기술유출 사건의 수사 역량을 높이기 위한 제도적 장치도 마련된다.
산업통상부에 기술유출 관련 특별사법경찰 권한을 부여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정책부처와 조사·수사기관 사이의 정보 공유를 활성화해 사건 발생 시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협력체계를 구축할 예정이다.
정부는 기술유출 사건에 대한 사법적 판단의 전문성을 높이는 방안도 함께 검토하고 있다.
대법원 양형기준 상향과 벌금형 양형기준 신설의 필요성을 관계기관과 함께 공론화해 기술유출 범죄에 대한 실질적인 처벌 수준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특히 재판 과정에서 유출된 기술이 산업기술에 해당하는지 법원이 산업통상부에 확인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해 기술의 성격을 둘러싼 판단의 정확성을 높일 계획이다.
정부는 이러한 제도 개선을 통해 기술유출 범죄에 대한 수사와 재판의 실효성을 높이고, 처벌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제도적 공백을 최소화한다는 방침이다.
산업통상부는 이날 논의된 주요 과제를 산업기술보호법과 국가첨단전략산업법 개정안에 반영해 이달 중 발의할 계획이다.
아울러 당초 일정보다 1년 앞당겨 준비하고 있는 '제6차 산업기술보호 종합계획'에도 관련 내용을 담아 올해 안에 발표할 예정이다.
김정관 장관은 "기술유출은 국가와 기업이 오랜 시간과 막대한 비용을 들여 축적한 산업경쟁력을 한순간에 무너뜨리고, 국가안보까지 위협하는 중대한 문제인 만큼 결코 가볍게 다룰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가 법률 개정과 종합계획 수립 등 후속 조치를 차질 없이 추진해 국가 산업기술 보호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번 대책은 기술유출 사고 발생 이후의 처벌에 머무르지 않고, 핵심기술 지정부터 연구개발 보안, 인력 관리, 수사와 재판에 이르는 전 과정의 보호체계를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향후 관련 법률 개정과 관계기관 간 공조체계 구축이 실질적인 기술유출 예방 효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가 주요 과제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