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묘배향, 학문 아닌 정치의 산물
▲민성배 유도회장, 문묘배향의 변천사 강연(사진 = 해남향교)2026.04.18, snakorea.rc@gmail.com , *재판매 및 DB 금지
【광주·전남 = 서울뉴스통신】 김재희 기자 = 전남 해남향교 유도회장 민성배는 지난 17일 해남향교 충효관에서 열린 강연에서 전통 유교 의례인 문묘배향이 단순한 학문적 평가를 넘어 정치적 산물이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문묘배향의 변천사’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 문묘가 종묘와 함께 왕조의 정통성과 정치적 정당성을 상징하는 핵심 공간임을 밝혔다.
민 회장은 문묘의례를 “유교 정치문화를 대표하는 중요한 국가 의례”라고 규정하며, 고려시대부터 이어진 문묘배향이 조선시대에 들어 정치적 요소와 권력 관계에 따라 크게 변모했다고 설명했다. 고려시대에는 설총·최치원·안향 등이 공자와 함께 배향되었으나, 조선시대에는 학문적 업적뿐 아니라 왕실과의 관계, 정치적 입장이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했다.
조선 초기에는 정치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이색·이숭인·권근 등 일부 유학자들이 배향되지 못했으며, 중종대 이후 정몽주가 처음으로 문묘에 배향됐다. 이어 선조대에는 김굉필·정여창·조광조·이언적·이황 등 이른바 ‘오현’의 종사가 추진되었으나 사림 내부의 분열로 지연되다가 광해군 2년에 이르러서야 배향이 확정됐다.
민 회장은 남명 조식의 사례를 언급하며, 전국적인 상소 운동에도 불구하고 왕의 재가를 얻지 못해 배향이 무산된 점을 들어 정치적 요인이 뚜렷하게 작용했음을 강조했다. 또한 조선 후기 붕당 정치가 심화되면서 특정 학파와 정치 세력의 영향에 따라 문묘 배향 인물이 추가되거나 기존 인물이 출향·복향되는 사례가 반복되었다고 지적했다. 이이와 성혼의 출향·복향, 김장생·송시열·송준길 등의 배향 과정이 대표적 사례로 꼽혔다.
▲문묘배향 강연 개최(사진 = 해남향교)2026.04.18, snakorea.rc@gmail.com , *재판매 및 DB 금지
그는 “문묘배향은 유학의 도통과 학문적 정통성을 표방하는 제도이지만, 실제 운영에서는 왕실과 사림 간 정치적 힘의 균형과 타협이 크게 작용했다”며 “문묘는 학문과 정치가 결합된 상징적 공간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해남향교는 매월 음력 초하루와 보름에 대성지성문선왕 공자를 비롯한 오성에 대한 삭·망분향례를 봉행하고 있으며, 분향례 후에는 유림을 대상으로 내외 유명 강사를 초청해 강연을 실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