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와 인간의 경계 허문 색채…허숙이 개인전 ‘빛의 궤적’

【서울 = 서울뉴스통신】 최정인 기자 = 허숙이 작가의 15번째 개인전 ‘빛의 궤적’이 서울 종로구 인사동 갤러리 루벤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오랜 시간 천착해 온 ‘빛·시간·존재’에 대한 탐구를 집약한 신작들로 구성되며, 그의 예술 세계가 한 단계 확장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허숙이 작가는 색과 빛, 그리고 흐름이라는 조형 언어를 통해 인간 존재와 우주를 연결하는 작업을 지속해 온 작가다. 그는 물리적 공간을 넘어 감각과 사유의 영역까지 확장되는 회화를 추구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과 감정을 시각화하는 데 집중해 왔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빛의 궤적’이라는 개념이다. 작품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곡선은 단순한 조형 요소를 넘어, 시간의 흐름과 존재의 흔적을 상징한다. 작가는 이를 통해 생성과 소멸, 그리고 순환이라는 우주의 원리를 화면 위에 풀어낸다.

전시 작품들은 강렬한 색채와 깊이 있는 레이어를 통해 시각적 밀도를 한층 끌어올렸다. 붉은색과 푸른색, 노란색이 서로 충돌하고 스며들며 만들어내는 색의 흐름은 우주의 팽창과 에너지의 움직임을 연상시킨다. 동시에 그 안에서 유려하게 이어지는 선들은 인간 내면의 감정과 기억, 시간의 흔적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특히 이번 신작들은 이전보다 더욱 확장된 스케일과 자유로운 색채 운용을 보여준다. 화면을 가득 채운 색의 층위는 단순한 시각적 효과를 넘어, 관람객으로 하여금 작품 속으로 ‘몰입’하게 만드는 장치로 작용한다. 이는 작가가 오랜 시간 축적해 온 색채 실험과 조형 감각의 결과로 풀이된다.

허숙이 작가는 이번 전시에 대해 “우리는 별을 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미 지나간 빛의 흔적을 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며 “작품 속 선들은 그러한 빛의 궤적이며, 시간과 인간의 내면은 결코 분리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겹겹이 쌓인 색의 층은 우주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인간 감정의 층위”라며 “우리가 바라보는 빛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을 지나온 시간의 흔적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그의 작업은 단순한 추상 회화를 넘어 철학적 사유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빛’이라는 물리적 현상을 매개로 삼아 시간성과 존재론적 질문을 동시에 제기하며, 관람객에게 감각적 경험과 사유의 여백을 함께 제공한다.

전시 현장에서도 이러한 작품의 힘은 그대로 드러났다. 작품 앞에 선 관람객들은 긴 시간 머무르며 각자의 방식으로 작품을 해석했고, 감상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이어졌다. 한 관람객은 “우주의 흐름을 눈앞에서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며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오래 남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람객은 “그림을 잘 알지 못하지만 강한 에너지에 끌린다”며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었지만 이미 판매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쉬웠다”고 전했다. 외국인 관람객들 역시 작품을 배경으로 사진을 촬영하며 높은 관심을 보였다.

전시장 분위기 또한 인상적이다. 갤러리 내부는 작품의 색채가 더욱 강조될 수 있도록 절제된 공간으로 구성됐으며, 입구를 지나는 행인들의 발걸음을 자연스럽게 멈추게 만드는 ‘흡인력’을 보여준다. 실제로 일반 관람객뿐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까지 유입되며 전시의 열기를 더하고 있다.

이날 황재성 한국미술비전25 대표는 “빛이 있기에 우리가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며 “허숙이 작가의 작업은 빛을 통해 회화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고 평가했다.

허숙이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색과 빛, 그리고 시간이라는 근원적 요소를 바탕으로 자신의 작업 세계를 한층 심화시켰다. 특히 우주적 스케일과 인간 내면의 감정을 하나의 화면 안에서 결합시키며, 회화가 지닌 확장 가능성을 다시 한번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한편 이번 개인전 ‘빛의 궤적’은 신작 회화 작품들을 중심으로 구성되며, 관람객에게 색채와 빛이 만들어내는 감각적 경험과 깊은 사유의 시간을 동시에 제공한다. 전시는 오는 7일까지 인사동 갤러리 루벤에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