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대출 규제 강화에 월세화 가속…서민 주거 대책 '미흡'

【서울 = 서울뉴스통신】 이성현 기자 = 정부가 전세대출 규제를 잇따라 강화하면서 전세 시장이 빠르게 월세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수도권 입주 물량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세입자들의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전세대출 규모는 2015년 46조원에서 지난해 말 200조원으로 불어나 10년간 연평균 18.5% 증가했다. 같은 기간 가계대출 증가율 5.8%를 크게 웃돌았다. 정부는 전세대출이 과도하게 늘어나면서 전세가격 상승, 매매가 인상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 규제에 나섰다.

지난 6·27 대책에서는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을 금지하고 전세퇴거자금 대출을 1억원으로 제한했다. 전세대출 보증 비율도 수도권 주택 기준 90%에서 80%로 줄였다.

이어 9·7 대책에서는 1주택자의 수도권 전세대출 한도를 기존 보증기관별 2억~3억원에서 2억원으로 일원화했다. 이로 인해 기존 주택을 보유한 세입자들의 대출 한도는 평균 6500만원가량 줄어들게 됐다.

실제 시장에서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6·27 대책 발표 직후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2만4855건에서 최근 2만2927건으로 7.8% 감소한 반면, 월세 매물은 1만8796건에서 1만9259건으로 2.4% 늘었다. 세입자들은 대출 한도 축소로 전세금을 마련하기 어려워졌고, 임대인들 역시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선호해 월세와 반전세 계약을 확대하는 추세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전세대출 규제는 장기적으로는 필요할 수 있지만, 공급이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서민 주거 부담만 늘어날 수 있다”며 “공급 효과가 체감되기 전까지는 서민층을 위한 주거 안정 장치를 병행하는 세밀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전세대출의 급증을 억제하려는 정책적 의도는 타당하지만, 단기간에 강화된 규제가 월세 전환을 앞당기고 서민 주거비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후속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