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프리랜서 노동환경 '사각지대'…절반 이상 계약서 없이 일해
서울시내 한 도로에서 음식배달 종사자가 배달을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배달 라이더) / 사진 = 서울뉴스통신 이성현 기자
【서울 = 서울뉴스통신】 최정인 기자 = 청년 프리랜서들의 불안정한 노동환경이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3명 중 1명은 시간당 수입이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했으며, 절반 이상은 계약서 없이 일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소득 단절과 부당한 계약 관행에 더해 인공지능(AI) 확산에 따른 일자리 감소 우려까지 커지면서 고용 형태와 관계없이 노동자의 기본 권리를 보장할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5일 고용노동부가 개최한 '청년 프리랜서 오픈마이크'에서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온라인 플랫폼노동·프리랜서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 9월 9일부터 20일까지 19~55세 플랫폼 종사자와 프리랜서 15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이 가운데 서울·경기·인천에 거주하는 19~34세 청년 462명의 응답을 별도로 분석했다.
조사 결과 청년 프리랜서의 월수입 중앙값은 80만원에 불과했다. 프리랜서 활동을 주된 생계수단으로 삼는 청년의 월수입 중앙값도 165만원에 머물렀다.
특히 프리랜서를 주업으로 하는 청년 가운데 54.3%는 월수입이 200만원에 미치지 못했다. 부업으로 활동하는 청년의 월수입 중앙값은 30만원으로 조사됐다.
시간당 수입이 최저임금보다 낮은 청년은 전체의 33.3%에 달했다. 올해 3개월 이상 소득이 전혀 발생하지 않은 기간을 경험한 비율도 37.4%로 나타나 수입의 불안정성이 두드러졌다.
노동시간 역시 적지 않았다. 청년 프리랜서의 주당 평균 업무시간은 17.3시간으로, 주업 종사자는 23.6시간, 부업 종사자는 11.1시간이었다.
야간에 일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42.9%였으며, 일주일에 3일 이상 야간노동을 수행한 청년도 18.8%에 이르렀다.
계약과 보수 지급 과정에서도 취약한 근로 여건이 확인됐다.
응답자의 54.1%는 업무를 시작하면서 별도의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최근 1년 사이 부당한 대우를 한 차례 이상 경험한 청년은 44.4%였다.
프리랜서 경력이 길어질수록 부당대우를 경험하는 비율도 높아졌다.
경력 1년 미만 청년의 부당대우 경험률은 40.2%였지만, 3년 이상 활동한 청년은 53.3%로 절반을 넘어섰다.
3년 이상 경력자 가운데 35.5%는 업무 내용이 반복적으로 변경되는 상황을 겪었고, 31.4%는 약속된 보수를 제때 받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계약에 포함되지 않은 추가 작업을 요구받은 비율도 27.8%였다.
고용 불안에 대비할 사회보험 가입률도 낮았다.
청년 프리랜서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17.5%, 산업재해보상보험 가입률은 13.4%에 그쳤다. 특히 19~24세 청년의 43.9%는 자신의 고용보험 가입 여부조차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안정한 소득과 노동조건은 정신건강 문제와도 밀접하게 연관된 것으로 조사됐다.
전체 청년 프리랜서 중 우울 의심군으로 분류된 비율은 30.3%였다.
소득 단절과 부당대우, 잦은 야간노동, 최저임금 미만 수입 등 불안정 요인을 경험하지 않은 청년의 우울 의심 비율은 13.1%였지만, 이러한 요인을 3개 이상 경험한 집단에서는 57.6%까지 높아졌다.
AI 기술의 빠른 확산도 청년 프리랜서들에게 새로운 고용 불안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응답자의 55.2%는 향후 10년 안에 AI로 인해 일자리를 잃을 가능성을 우려했다. 실제 AI를 활용하고 있는 청년 397명 가운데 39.8%는 AI 도입 이후 일감이 감소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처럼 소득과 고용 안정성이 취약한 상황에서 청년들은 공정한 계약과 분쟁 해결을 위한 법적 보호 장치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부당대우를 경험한 응답자의 85.4%는 별도의 분쟁조정 제도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표준계약서 관련 법률 마련에 동의한 비율은 81.0%, 수수료 규제가 필요하다는 응답은 78.5%였다.
김종진 소장은 청년 프리랜서의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핵심 과제로 △경력 인정과 증명체계 마련 △소득 및 사회보험 보장 강화 △공정한 거래질서 확립 △AI 산업 전환에 따른 직업훈련과 전직 지원을 제시했다.
프리랜서 경력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소득을 기반으로 고용보험을 적용하는 한편, 표준계약서와 분쟁조정 절차를 마련해 불공정한 거래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제도적 개선의 기반으로는 '일하는 사람 기본법' 제정이 강조됐다.
조사에 참여한 청년 프리랜서의 76.6%가 해당 법률의 필요성에 공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하는 사람 기본법은 근로계약 체결 여부나 고용 형태에 관계없이 프리랜서와 플랫폼 종사자 등 모든 일하는 사람에게 공정한 계약과 정당한 보수, 안전한 노동환경을 보장하기 위한 법안이다.
이날 간담회에는 청년 프리랜서와 청년단체 관계자 등 19명이 참석해 현장에서 경험한 불공정 계약과 임금 미지급, 사회보험 사각지대 등의 문제를 공유했다.
영상 편집 분야에서 활동하는 한 청년은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채 행사 관련 업무를 수행하다 행사가 취소되면서 이미 완료한 작업에 대한 대가를 지급받지 못한 경험을 전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보수를 받지 못했을 때 민사소송 외에는 현실적으로 도움받을 방법이 부족하다며, 노동위원회 등을 활용한 신속한 분쟁조정 절차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고용노동부 장관 김영훈 2026.03.17 / 사진 = 고용노동부 제공
정부는 청년 프리랜서의 권익 보호를 위해 올해 안에 일하는 사람 기본법 제정을 추진할 방침이다.
이를 토대로 소득 기반 고용보험 도입과 산업안전보건법 적용 대상 확대, 노무제공자 복지 지원 강화 등 관련 정책을 단계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아울러 프리랜서와 플랫폼 종사자의 생활 안정 및 권리 보호를 종합적으로 지원하는 가칭 'K-노동복지회의소' 구축도 검토하고 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프리랜서가 비교적 자유로운 방식으로 일하더라도 현장에서 발생하는 어려움까지 개인에게 전적으로 떠넘겨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청년들이 불공정 계약이나 소득 불안정에 홀로 대응하지 않도록 국가 차원의 보호체계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장관은 연내 일하는 사람 기본법 제정을 추진해 고용 형태와 관계없이 누구나 기본적인 노동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전국민 고용보험과 산업안전보건법 적용 확대, 근로복지 지원 강화 등 후속 과제도 차질 없이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청년 프리랜서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서는 법률 제정과 함께 실효성 있는 계약 보호, 사회보험 확대, 분쟁 해결 절차 마련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AI 확산으로 일자리 구조가 빠르게 변화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고용 형태에 대응할 사회안전망 구축이 중요한 정책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