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조원 쌓아두고 필요할 때 쓴다…미래대응기금, 재정 운용 재량 우려
기획예산처는 25일 조용범 기획처 차관 주재로 '2026년 제5회 민간투자사업심의위원회'를 열고 총사업비 6조8000억원 규모의 철도·환경 분야 민간투자사업 4건과 민간투자사업기본계획 개정안을 심의·의결했다고 밝혔다. (사진=기획처 제공)
【서울 = 서울뉴스통신】 김부삼 기자 =정부가 반도체 호황으로 늘어난 세수를 활용해 100조원이 넘는 재원을 미래대응기금에 적립하고 향후 재정 여건에 따라 탄력적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세수가 많이 걷힌 해에 재원을 한꺼번에 지출하거나 국가채무 상환에 모두 투입하기보다 호황기에 여유자금을 비축한 뒤 세수 감소나 예상하지 못한 재정 수요가 발생할 경우 활용하겠다는 취지다.
다만 정부안이 그대로 시행되면 일정 범위에서는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이나 국회의 사전 심의 없이 기금운용계획을 변경해 재원을 사용할 수 있다. 특히 세수 결손을 보전하기 위한 일반회계 전출에는 30% 제한도 적용하지 않을 예정이어서 정부의 재정 운용 재량이 지나치게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1일 기획예산처가 발표한 '2027년 예산안'에 따르면 정부는 내년 162조3000억원 규모의 미래대응기금을 신설한다.
전체 재원 가운데 45조4000억원은 실제 사업에 투입한다. 청년과 성장동력, 지방, 교육·인재 등 4대 분야에 재원을 배분하고, 12조5000억원은 신규 국채 발행을 줄이는 데 활용한다.
나머지 104조4000억원은 당장 사용하지 않고 여유자금으로 적립한다. 전체 기금 수입의 64.3%에 해당하는 규모다. 오는 9월 세수 재추계 결과 올해 내국세가 당초 예상보다 많이 걷힐 경우 적립 규모는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정부는 세수를 한꺼번에 일반회계 지출로 돌릴 경우 재정지출 증가폭이 지나치게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창환 기획예산처 예산총괄심의관은 104조4000억원을 적립하지 않고 일반회계 지출에 모두 사용하면 내년 총지출 증가율이 "27%가 넘는다"고 밝혔다. 그는 "내년 예산을 27% 증가율로 가져간다는 것은 그 이후 중기적인 총량 관리에서 엄청난 후폭풍이 오게 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내년 총지출 820조9000억원에 여유자금 104조4000억원을 단순히 더하면 925조3000억원이다. 올해 본예산 727조9000억원과 비교하면 197조4000억원, 27.1% 증가하는 수준이다.
그렇다고 104조4000억원을 모두 국가채무 상환에 사용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박 심의관은 내년 국고채 총 발행 규모가 221조8000억원으로 예정된 상황에서 100조원대 재원을 한꺼번에 채무 축소에 투입하면 국채 발행량이 지나치게 줄어들어 국채시장 자체의 안정적인 형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이에 따라 추가 세수를 모두 지출하거나 국가채무를 대폭 줄이는 대신, 미래대응기금에 일부 재원을 남겨두는 방식을 선택했다. 기금을 통해 신규 국채 발행을 12조5000억원 줄이는 한편 104조4000억원은 향후 재정 상황에 대비해 적립하는 구조다.
미래대응기금 신설의 또 다른 이유는 재정 대응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박 심의관은 일반회계의 경우 재원을 다음 연도로 넘겨 비축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미래대응기금이 일종의 재정 '댐'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도 중 예상하지 못한 재정 수요가 발생하면 일반회계는 추경 편성과 국회 심의 등을 거쳐야 하지만, 기금에 여유자금을 미리 쌓아두면 보다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기금의 신축적인 운용이 정부의 재정 운용 재량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미래대응기금을 사업성 기금과 금융성 기금의 성격을 함께 갖는 '하이브리드 기금'으로 설계했다. 정부안대로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주요 항목의 30% 범위에서는 국회의 사전 심사를 다시 받지 않고 기금운용계획을 변경할 수 있다.
특히 세수 결손을 보전하기 위해 미래대응기금에서 일반회계로 전출하는 경우에는 이 30% 제한도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정부가 기금운용계획을 자체적으로 변경해 일반회계로 재원을 옮길 수 있도록 별도의 예외조항을 두겠다는 것이다.
기금으로 지원할 수 있는 사업의 범위도 넓게 설정했다. 신규 사업뿐 아니라 기존 계속사업도 대상에 포함된다.
조용범 기획예산처 차관은 혼인·출산 등 계속사업이 포함된 것과 관련해 신규·계속사업 여부 자체가 선정 기준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는 "미래 대응에 도움이 되는가 아닌가"를 기준으로 사업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청년·성장동력·지방·교육·인재 등 4대 분야에서 미래 대응에 의미가 있다고 판단되는 사업이라면 기존 계속사업도 기금으로 지원할 수 있다.
세수 결손이 발생했을 때 어느 시점부터 기금을 사용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정량 기준도 마련되지 않았다.
조 차관은 "어떤 게 세수 결손이냐고 했을 때 객관적인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기존 이·전용 등을 통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 안정적인 재정 운용이 어려워지는 경우 기금을 활용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기금 운용의 신축성이 국회의 재정 통제를 피하기 위한 장치는 아니라고 강조한다.
다른 기금은 운용계획을 변경한 뒤 해당 분기가 끝난 다음 달 말까지 국회에 통보할 수 있지만, 미래대응기금은 변경 즉시 국회에 제출하도록 법안에 담을 계획이라는 설명이다. 기존 기금에 적용되는 성과평가와 존치평가 역시 동일하게 적용한다.
100조원대에 달하는 여유자금을 어떻게 운용할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았다. 정부는 기존 연기금 투자풀과 별도로 전문 투자운용기관을 선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운용 과정에서 발생한 수익은 다시 미래대응기금의 여유자금으로 적립할 방침이다. 다만 구체적인 운용 방식과 목표수익률, 손실이 발생했을 때의 대응 방안 등은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 결정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