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탁에 맞선 인간의 절규…최수종·양준모가 완성한 비극 '오이디푸스'
연극 '오이디푸스' 시연회는 더블 캐스팅된 오이디푸스 역의 양준모와 최수종이 각각 주요 장면을 나눠 선보였다. 2026.06.23 / 사진 = 서울뉴스통신 최정인 기자
【서울 = 서울뉴스통신】 최정인 기자 = "내 운명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는 것. 이보다 더 끔찍한 신탁이 또 있단 말인가"
서울 금천구 리지스튜디오에서 23일 공개된 연극 '오이디푸스' 연습실 시연은 단순한 작품 소개를 넘어 인간과 운명, 권력과 진실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시간이었다.
오는 7월 4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개막을 앞둔 연극 '오이디푸스'는 고대 그리스 비극의 정수로 꼽히는 소포클레스 원작을 바탕으로 한다. 모든 것을 가진 왕이자 영웅이었던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출생의 비밀과 마주하며 무너져가는 과정을 통해 인간 존재의 한계와 운명의 아이러니를 그린다.
이날 시연회는 더블 캐스팅된 오이디푸스 역의 양준모와 최수종이 각각 주요 장면을 나눠 선보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연극 '오이디푸스' 시연회에서 더블 캐스팅된 오이디푸스 역의 양준모가 주요 장면을 선보이고 있다. 2026.06.23 / 사진 = 서울뉴스통신 최정인 기자
먼저 무대에 오른 양준모는 강렬한 에너지와 압도적인 성량으로 오이디푸스의 불안과 분노를 표현했다. 테베를 덮친 재앙의 원인을 찾기 위해 예언자 테레시아스를 찾아간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의심받기 시작하자 주변 사람들을 향해 날을 세운다.
특히 크레온을 반역자로 몰아붙이는 장면에서는 권력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군주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진실을 추적하던 인물이 오히려 진실을 외면하려는 역설적인 모습은 극의 긴장감을 극대화했다.
이어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며 "나는 더러운 사람이 아니다"라고 절규하는 장면에서는 오이디푸스 내면에 자리한 공포와 혼란이 폭발적으로 분출됐다. 양준모는 붉게 상기된 얼굴과 흔들리는 눈빛, 폭발적인 감정선으로 신탁에 짓눌린 인간의 절망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연극 '오이디푸스' 시연에서 더블 캐스팅된 오이디푸스 역의 최수종이 주요 장면을 선보이고 있다. 2026.06.23 / 사진 = 서울뉴스통신 최정인 기자
가뭄에 시달리는 테베를 구하기 위해 진실을 추적하던 오이디푸스는 점차 모든 단서가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다. 왕비 이오카스테의 위로 속에서도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는 최수종의 연기는 인물의 내면을 차분하면서도 깊이 있게 드러냈다.
극의 전환점은 코린토스의 사자가 등장하는 순간 찾아온다. 폴리보스 왕의 죽음을 전하러 온 사자는 오이디푸스가 코린토스 왕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밝힌다.
남명렬이 연기하는 코린토스의 사자 2026.06.23 / 사진 = 서울뉴스통신 최정인 기자
아버지를 죽일 것이라는 신탁에서 벗어났다고 안도했던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버려진 아이였으며, 저주를 피하려 했던 선택들이 오히려 신탁을 완성해왔음을 깨닫는다.
최수종은 진실을 알아갈수록 무너져가는 인간의 심리를 절제된 감정 연기로 표현했다. 자신이 찾고 있던 살인자가 결국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과정은 한 편의 심리 스릴러를 보는 듯한 긴장감을 선사했다.
이번 작품에서 또 하나 눈길을 끄는 부분은 탄탄한 조연진의 존재감이다.
연극 '오이디푸스' 시연에서 더블 캐스팅된 이오카스테 역의 임강희와 서영희가 주요 장면을 선보이고 있다. 2026.06.23 / 사진 = 서울뉴스통신 최정인 기자
이오카스테 역의 임강희와 서영희는 비극의 중심에서 흔들리는 여인의 복합적인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했고, 크레온 역의 최수형과 강성진은 극의 갈등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또한 남명렬이 연기하는 코린토스의 사자와 박정자, 이형훈, 임병근 등 베테랑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무게감은 작품 전체의 완성도를 한층 높였다.
무엇보다 이날 공개된 '삼거리' 장면은 공연의 백미로 꼽혔다. 선왕 라이오스가 살해된 장소와 오이디푸스가 과거 한 노인을 죽인 장소가 동일한 곳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진실의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한다.
연극 '오이디푸스' 시연 후 배우들이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2026.06.23 / 사진 = 서울뉴스통신 최정인 기자
관객들은 이미 결말을 알고 있지만, 그 진실에 다가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숨 막히는 긴장감을 느끼게 된다. 이것이 25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오이디푸스'가 고전 비극의 걸작으로 남아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제작사 수컴퍼니가 선보이는 연극 '오이디푸스'는 인간은 과연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현대 관객들에게 다시 던진다.
최수종과 양준모가 서로 다른 결로 완성한 두 명의 오이디푸스, 그리고 베테랑 배우들이 빚어낸 묵직한 앙상블은 올여름 무대에서 가장 강렬한 비극적 체험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연극 '오이디푸스'는 7월 4일부터 8월 23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된다.
연극 '오이디푸스' 시연 후 배우들이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2026.06.23 / 사진 = 서울뉴스통신 최정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