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하는 편이 낫겠습니다”…연극 ‘필경사 박들비’

연극 ‘필경사, 박들비’ 포스터와 연습사진 2026.10.21 / 사진 = 극단 은행나무

【서울 = 서울뉴스통신】 최정인 기자 = 

“우리는 왜 끊임없이 일하고, 무엇을 위해 자신의 삶을 소모하고 있는가”

연극 ‘필경사, 박들비’는 한 사람의 작은 거절을 통해 사회가 요구하는 순응과 개인의 자유 사이에 놓인 갈등을 들여다보며 현대인에게 노동의 의미와 개인의 선택, 인간의 존엄성을 되묻는다.

극단 은행나무가 선보이는 창작극 ‘필경사, 박들비’가 오는 27일부터 11월 1일까지 서울 대학로 스카이씨어터 2관에서 초연된다. 영화감독이자 연극 연출가인 이상철이 극본과 연출을 맡았으며, 극단 은행나무와 함께하는 두 번째 창작극이다.

이번 작품은 미국 작가 허먼 멜빌이 1853년 발표한 단편소설 ‘필경사 바틀비’를 바탕으로 한다. 산업화 시대의 노동과 인간 소외를 다룬 원작의 배경을 2026년 서울 강남의 사무실로 옮겨 오늘날 직장인들이 마주하는 현실과 심리적 갈등을 조명한다.

원작의 남성 필경사 바틀비는 30대 여성 계약직 교열원 ‘박들비’로 새롭게 태어났다. 인물의 성별과 시대적 배경은 바뀌었지만, 조직의 질서에 순응하지 않는 개인의 태도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균열이라는 원작의 핵심 문제의식은 유지하고 있다.

이야기는 맡은 업무를 묵묵히 수행하던 박들비가 어느 날 갑자기 일을 거부하면서 시작된다. 박들비는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거나 타인을 설득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안 하는 편이 낫겠습니다”라는 짧은 말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다.

효율과 경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끊임없이 성과를 요구하는 사회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한 사람의 선언은 어떤 파장을 일으킬까. 박들비의 조용한 거절은 사무실을 지탱하던 익숙한 규칙을 흔든다.

31년 동안 합리적인 판단과 원칙을 신뢰하며 살아온 정 대표는 박들비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 채 혼란에 빠진다. 함께 일하는 이 대리와 김 인턴 역시 그녀의 선택을 지켜보며 자신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노동과 일상의 의미를 돌아보게 된다.

작품은 박들비가 왜 일을 거부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주변 인물들이 그녀의 행동에 반응하는 과정을 통해 개인의 선택을 인정하지 못하는 조직의 관습과 사회적 통념을 드러낸다.

특히 한정된 소극장 공간에서 네 인물의 대립과 심리 변화를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구성이 특징이다. 인물 사이의 침묵과 대화, 미묘한 감정의 변화가 극적 긴장감을 형성하며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극본과 연출을 맡은 이상철은 이번 작품에서 팬데믹과 인공지능(AI)의 확산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는 현대사회를 배경으로 청년 세대의 무기력과 세대 간 단절, 삶의 목적에 대한 고민을 무대 위에 펼쳐낸다.

이상철 연출은 “물적 성장이 행복을 보장하리라 믿었던 세상이 흔들리는 지금, 우리는 무엇을 향해 달려왔는지 되물어야 한다”며 “이 갑갑하고 무기력한 정신적 감기의 정체가 무엇인지 관객과 함께 진단해 보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연극 ‘필경사, 박들비’ 출연진 2026.10.06 / 사진 = 극단 은행나무 이종윤 제공 

주인공 ‘박들비’ 역을 맡은 배우 민채민은 조직의 요구에 침묵으로 맞서는 인물을 통해 말보다 강렬한 거절의 의미를 전달할 예정이다.

‘정 대표’ 역의 배우 이종윤은 합리성과 원칙을 중시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상황 앞에서 흔들리는 인물의 내면을 표현한다.

‘이 대리’ 역은 배우 유정하, ‘김 인턴’ 역은 배우 조유리가 맡아 서로 다른 세대와 입장에서 박들비의 행동을 바라보는 인물들을 연기한다.

1994년 창단한 극단 은행나무의 연극 ‘필경사, 박들비’는 2026년 야간 공연 관람권 운영 사업과 서울 순수 공연예술 통합 브랜드 ‘서울어텀페스타’, 한국메세나협회 지원사업 등에 선정됐다.

특히 10월 30일 공연은 야간 공연 관람권 운영 사업과 연계한 특별 회차로 진행된다.

연극 ‘필경사, 박들비’는 10월 27일부터 11월 1일까지 서울 대학로 스카이씨어터 2관에서 총 6회 공연된다. 공연 시간은 평일 오후 7시 30분, 주말 오후 3시이며, 러닝타임은 90분이다. 예매는 NOL티켓에서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