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정비구역 389곳 해제·1조원 투입 실패 반성

‘서울 주택 공급정책 20년의 평가와 성찰’ 표지. (사진=서울시 제공) 2026.10.16, snakorea.rc@gmail.com ,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 = 서울뉴스통신】 이민희 기자 = 서울시가 과거 정비구역 해제와 보존 중심 도시재생 정책으로 주택공급 기반이 약화되고 재정 투입 효과도 제한적이었다는 점을 되짚는 백서를 발간한다. 

서울시는 ‘서울 주택 공급정책 20년의 평가와 성찰’ 백서를 발간할 예정이라고 16일 밝혔다. 백서에는 2000년대 뉴타운·정비사업으로 확충한 주택공급 기반이 2012~2020년 크게 축소된 과정과 도시재생 정책의 한계, 2021년 오세훈 시장 취임 이후 추진한 공급 기반 복원 정책 등이 담겼다.

서울의 정비사업은 2002년 시범 뉴타운 3곳 지정으로 본격화했다. 이후 뉴타운과 균형발전촉진지구 35곳, 정비구역 297곳을 통해 총 30만9,000호 규모의 공급계획이 마련됐다. 주택 공급과 함께 도로·공원 등 기반시설을 확충해 노후 주거지를 종합적으로 개선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2012~2020년 정비구역 해제가 이어지면서 공급 기반이 크게 줄었다. 당시 전체 정비구역 683곳 가운데 389곳, 약 57%가 해제됐고, 약 43만 호의 주택을 공급할 기회도 사라졌다. 서울시는 장기적인 공급 대책 없이 정비사업을 중단한 정책 판단이 주거환경 개선을 늦추고 공급 기반을 약화시켰다고 평가했다.

해제된 구역 가운데 현재 177곳에서는 정비사업이 다시 추진되고 있다. 사업을 중단했더라도 주거환경을 개선하려는 주민 수요가 사라진 것은 아니며, 상당수 지역이 다시 정비에 나섰다는 점에서 해제 정책의 한계가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백서는 해제 과정에서 주민 의사와 절차적 정당성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사례도 짚었다. 해제 구역 389곳을 유형별로 보면 주민 의견조사 없이 직권해제한 사례가 66곳(17%), 의견조사 과정의 절차상 문제 등이 있었던 사례가 264곳(68%), 주민들의 사업 추진 의사와 달리 일몰기한 등을 이유로 해제한 사례가 59곳(15%)이었다.

창신·숭인 재정비촉진지구 7개 구역과 사직2구역은 사업성이나 역사·문화적 가치 보존 등을 이유로 주민 의견조사 없이 해제됐다. 특히 사직2구역의 직권해제는 대법원에서 위법 판결을 받았고, 관련 근거 조례도 이후 삭제됐다.

장위15구역에서는 일부 주민의 정확한 주소와 연락처를 확인하지 않은 채 우편물을 보내지 않고 공시송달로 처리한 사례가 확인됐다. 신길1구역은 투표 참여율이 12%에 그쳤지만 참여율을 높이기 위한 노력 없이 해제가 진행됐다. 주민들이 정비사업을 원해 일몰기한 연장을 요청했는데도 사업 가능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해제한 사례도 있었다.

공급 기반 축소는 실제 착공 물량 감소로 이어졌다. 2016~2020년 연평균 2만9000호였던 정비사업 착공 물량은 2021~2025년 연평균 1만5000호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서울시는 정비구역 지정부터 착공까지 수년이 걸리는 사업 특성상 과거 해제와 신규 지정 위축의 영향이 최근 공급 감소로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비사업의 대안으로 추진된 도시재생 정책도 백서의 주요 평가 대상이다. 서울시는 도시재생활성화사업에 약 9110억원, 주거환경개선사업에 약 1850억원 등 총 1조960억원을 투입했다. 하지만 보존 중심 사업을 진행한 일부 지역이 다시 정비사업으로 전환되면서 기존 사업에 투입한 비용이 충분한 성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같은 지역에 도시재생 예산을 투입한 뒤 다시 정비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재정 투입의 효율성이 떨어졌다는 평가도 담겼다.

주택 수요와 공급 여건의 변화도 주요 과제로 제시됐다. 최근 15년간 서울 거주인구는 약 18% 감소했지만 세대수는 약 14% 증가했다. 향후 10년 안에 정비가 필요한 노후주택은 약 193만 호로 추산된다. 신규 택지 확보가 어려운 서울에서는 기존 주거지를 정비하는 사업이 주택공급과 주거환경 개선에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오 시장은 2021년 취임 이후 규제 완화와 정비사업 정상화를 통해 공급 기반 복원에 나섰다. 취임 직후인 2021년 5월 ‘재개발 활성화를 위한 6대 규제완화 방안’을 발표하고 주거정비지수제를 폐지해 재개발 기회를 넓혔다. 공공기획을 도입한 뒤 신속통합기획으로 발전시켜 정비계획 수립과 구역 지정 절차를 신속하게 추진하도록 했다.

주민동의 확인 절차 간소화와 해제구역 내 노후지역의 신규 지정, 제2종 일반주거지역의 7층 규제 완화, 후보지 공모 등으로 정비사업 추진 기회도 확대했다. 민선 8기에는 사업성 보정계수와 현황용적률 인정, 공공기여 부담 완화 등을 통해 지역별 사업성 격차를 줄이는 데 집중했다. 2022년 도입한 모아주택·모아타운은 대규모 재개발이 어려운 노후 저층 주거지의 주택 정비와 도로·주차장 등 기반시설 확충을 함께 지원하는 사업이다.

이 같은 정책 변화 이후 2021~2025년 정비구역 지정은 172곳으로 늘었다. 2016~2020년 77곳과 비교하면 2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서울시는 회복한 공급 기반이 다시 약화되지 않도록 정책의 연속성을 확보하고, 사업성 개선과 인허가 기간 단축, 단계별 공정관리를 통해 2031년까지 31만 호 착공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번 백서는 과거 정책의 성과와 한계를 기록해 향후 주택정책에 반영하는 데 목적이 있다. 서울시는 주민 의사와 장기적인 공급 영향을 충분히 검토하고, 정비구역 지정 이후 착공과 준공까지 사업 진행 상황을 관리해 공급계획의 실행력을 높일 방침이다.

명노준 서울시 주택실장은 “이번 백서는 과거 사례를 정확한 통계와 근거로 조사하고 기록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것”이라며 “시민들에게 현재 공급 부족의 원인을 알리고 서울시 주택 공급정책의 발전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마련했다”고 밝혔다.